
은사주의-예언 사역에 정돈이 필요한 시점- 3부
-아셰르 인트레이터
인을 떼다
다니엘서에서 선지자는 이 글을 봉함하라(코템חותם)는 말씀을 네 번 듣고 이 말을 간수하라(소템סותם)는 말씀을 세 번 듣습니다. 이것은 글을 (사해사본처럼) 보존하는 것과 예언의 의미와 성취가 먼 미래에 관계될 것이라는 상징입니다.
그 미래는 언젠가 와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두루마리를 열고 나팔(쇼파르שופר)을 붑니다. 매일 우리는 마지막 때를 향해 점점 더 가까이 가고 있습니다. 종말론적 예언들은 여전히 부분적이지만, 그 부분적인 성취들은 언제나 더 “충만”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 계절의 시작에 있습니다 (마 24:8). 비록 많은 이들이 환멸을 느꼈지만 주님은 우리를 현재의 계절 혹은 예언적 계시의 단계로 전환시키기 위해서 이러한 상황을 지렛대로 사용하신다고 믿습니다. 뒤를 돌아보지 말고 앞을 바라보며 위를 바라봅시다 (빌 3:13~14).
열방에 예언하라
요한계시록의 많은 부분이 마지막 때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시기와 관련이 있을 예언들이 있습니다. 예언은 하나님의 왕국이 단계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계속 성장하고 발전합니다 (막 4:26-29).
예언은 왕국의 도래를 선포합니다. 고대 선지자들이 그들의 세대에 왕의 통치를 선포했듯이, 예언 사역은 오늘날 예슈아의 영원한 왕국의 도래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0:11에서 요한은 더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해야 한다는 말씀을 듣습니다. 이것은 정치가 아닙니다. 열방과 정부에 하나님 왕국의 권세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 명령이 단지 요한에게만 그의 생애에 개인적으로 주신 것이었습니까? 그렇게 말한다면 성경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예언은 모두가 읽고 선포하도록 성경에 기록된 것입니다. 에클레시아는 예슈아 왕의 통치 아래,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령과 함께 하는 예언적 공동체입니다. 그분은 곧 오십니다. 그분의 왕국의 좋은 소식을 선포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마 24:14).
궁극적인 예언
예언의 각 단계는 하나님의 계획의 새로운 단계를 드러냅니다. 전에는 충만하게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예언은 알려지기 전에는 비밀이지만 알려지면 계시입니다. 요한계시록 10:7은 하나님 계획의 계시의 마지막 단계, 곧 마지막 비밀이 일곱째 쇼파르가 울리면 완전히 드러날 것이라고 우리에게 말합니다.
모든 비밀은 이미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적절한 타이밍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록된 것에 대한 현재적 깨달음을 얻게 하십니다. 그라포스(하나님의 기록된 말씀)는 레마(하나님의 계시된 말씀)가 됩니다. 크로노스(우주적 표준시)는 카이로스(지나고 있는 현재의 타이밍)가 됩니다.
그렇다면 예슈아께서 재림하시기 바로 직전에 있을 마지막 단계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그 순간에 대한 가장 적절하고 알맞은 예언입니다. 이 세상 나라가 하나님과 그분의 메시아 왕의 왕국이 될 것입니다 (계 11:15).
이것 자체가 정치는 아니지만, 정치의 종말로 볼 수 있습니다. 정부와 정부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왕께 순복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함
역사의 종말은 심판 날의 도래를 나타내는데, 모든 인류는 각각 선악 간에 하나님 앞에서 자기 삶에 대해 설명해야만 할 것입니다 (고후 5:10). 영원한 상급와 형벌의 관점은 하나님을 경외함의 기초입니다. 그것은 도덕성, 회개, 죄사함의 필요성, 구원의 긴급성의 기초가 됩니다.
심판 날이 가까워질수록 우리의 예언의 메시지에는 하나님을 경외함이 더욱 더 강해질 것입니다.
예언과 심판
마지막 때에는 많은 환난이 있을 것입니다. 환난은 하나님의 심판의 일부입니다. 심판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는데 이 생에 대한 것과 영원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은혜로운 일은 영원히 심판이나 저주를 받지 않고 이 생에서 더 많이 심판 받는 것입니다.
예슈아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그분이 우리 때문에 심판을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속죄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사면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은혜의 본질입니다.
그러나 이 생에서도 심판이 있습니다. 그러한 심판을 분별하는 것이 예언의 필수적인 부분입니다. 본질적으로 심판에는 좋은 부분과 나쁜 부분이 있습니다. 악인은 벌을 받고 의인을 상을 받습니다.
이 세상에 심판이 임할 때, “나쁜” 사건들이 반드시 수반됩니다. 우리가 영원한 심판의 때에 가까워질수록 어려움 혹은 환난은 점점 더 극심해질 것입니다.
이로 인해 혼란스러워지지 않게 하십시오. 모든 심판에는 좋은 부분과 나쁜 부분이 있습니다. 심판에는 극심한 어려움이 수반됩니다. 그러나 그 어려움 때문에 죄인은 회개하고 악인은 정화됩니다. 우리가 이 마지막 때에 예언적 분별력을 가지려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양날의 검”이라는 측면을 알아야만 합니다.
예언은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고, 심판으로 인해 주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러한 진리 가운데 행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기를 기도합니다.